민정준 교수, 세계적 권위 ‘Gordon Research Conference’ 차기 의장에 선출
신설 ‘Microbes as Therapeutics’ 분야 이끌어…
2028년 부의장 이어 2030년 의장으로 국제학술대회 개최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민정준 교수가 세계적인 기초·첨단과학 학술회의인 Gordon Research Conference(GRC)의‘Microbes as Therapeutics’ 분야 차기 의장으로 선출됐다. 민 교수는 2028년 GRC에서 부의장(Vice Chair)을 맡은 뒤 2030년 의장(Chair)으로서 학술대회를 이끌게 된다. 공동 의장에는 미국 버지니아공대(Virginia Tech)의 Bahareh Behkam 교수가 함께 선출됐다. Behkam 교수는 미세·나노 시스템 공학을 기반으로 암 치료를 위한 바이오하이브리드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Gordon Research Conference는 일반적인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와는 운영 방식이 다르다. 1931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시작된 GRC는 최신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은 최첨단 연구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는 것을 핵심 철학으로 삼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매년 395개가 넘는 분야별 회의가 개최되고 약 4만 명의 과학자가 참여한다.
특히 GRC는 참가 인원을 통상 200명 안팎 이하로 제한하는 소수 정예 방식을 고수한다. 참가 희망자가 사전에 신청하면 해당 분야의 GRC 의장이 참가 여부를 승인한다. 이는 참가자 모두가 단순한 청중이 아니라 토론에 직접 참여하는 연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GRC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다.
회의 역시 도심의 대형 컨벤션센터보다 비교적 외부와 떨어진 장소에서 5일간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오전과 저녁에는 연구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낮시간에는 포스터 발표와 정부기관과의 회의 등 다양한 교류가 이뤄진다. 유명 교수들의 강의 후에는 충분한 토론 시간을 배정하고, 우수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참가자들은 식사도 공동으로 하고 자유시간까지 연구자 간 비공식 토론과 새로운 협력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모든 일정을 참가자가 함께하는 것이다. GRC는 이를 통해 일회성 학술행사가 아니라 해당 분야의 국제 연구자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신설된 ‘Microbes as Therapeutics’ GRC는 지난 8월 2일부터 7일까지 미국 메인주 Bates College에서 개최됐다. 유전공학적으로 설계된 미생물을 이용해 암을 비롯한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다루기 위해 GRC가 올해 처음 독립적인 주제로 채택한 학술대회다. 특히 암 치료뿐 아니라 대사질환, 자가면역질환, 감염질환, 염증성 장질환 등으로 미생물 치료의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첫 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연구자와 학생들이 참여해 아침부터 밤 9시 30분까지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정규 강연뿐 아니라 포스터 세션과 자유 토론에서도 연구자들 간 논의가 계속됐으며, 새롭게 형성되는 학문 분야 특유의 강한 열정과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첫 GRC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민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의 개막 첫 세션인‘Bacterial Cancer Therapies’에서 ‘From Tumor-Targeting Bacteria to Programmable Living Medicine’을 주제로 첫 번째 기조강연을 맡아, 지난 20여 년간 수행해 온 종양 표적 박테리아 연구와 이를 치료물질을 생산·전달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살아 있는 의약품(living medicine)으로 발전시킨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이번 선출의 의미는 특히 ‘Microbes as Therapeutics’가 이제 막GRC의 독립 분야로 출범했다는 점에서 크다. 오랜 역사를 가진 기존 GRC와 달리 이 분야는 올해 첫 회의를 시작한 만큼, 향후 어떤 연구주제를 핵심 의제로 삼고 어떤 연구자들을 국제 연구 공동체에 참여시킬 것인지가 아직 형성되는 단계다.
GRC 의장은 단순히 학술대회를 진행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학술 프로그램의 주제를 정하고 세계 각국의 주요 연구자를 연자로 초청하며, 참가 신청을 심사하고 새로운 연구자와 차세대 과학자를 발굴하는 등 해당 연구 분야의 국제적 의제와 연구자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GRC는 각 분야의 차기 부의장을 참가자들이 회의 중 선출하는 전통을 갖고 있으며, 공식 프로그램에도‘Nominations for the Next Vice Chair(s)’와 선출 절차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학문 분야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한국 연구자가 의장으로 선출된 것은 단순한 개인적 영예를 넘어, 한국이 미생물 치료 연구의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는 위치를 넘어 앞으로의 연구 의제와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민 교수는“올해 첫 GRC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연구자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었다”며“하루 종일 발표와 토론이 계속됐지만 늦은 밤까지 질문과 논의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야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20여 년 전 박테리아를 암 치료에 이용하는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매우 작은 연구 분야였지만, 이제는 세계의 뛰어난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독립적인 Gordon Research Conference가 만들어졌다”며“이 학회의 초창기 의장을 맡게 된 만큼 개인의 연구를 넘어 이 분야의 다음 세대 연구자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과학적 질문이 연구자들과의 연결을 넘어 인류의 삶의 향상에까지 이르는 국제적인 학문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