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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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다는 잔인한 달, 4월.
인간의 가치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뇌하는 '인문학 이야기'가 개설됐다. 우리 대학 인문학연구소는 4월 11일, 18일 저녁 7시 인문대 3호관 4층 교수회의실에서 ‘봄밤에 나누는 인문학이야기’ 강좌를 마련했다.
11일에는 김성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가 ‘문화로 다가서는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끌어갔다.
인문학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전제아래 인문학자들은 과거 지식의 재생자이기 보다는 미래의 형성자가 되어야 하고 학문간의 칸막이를 제거해 스스로의 영역을 확대해야 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중들에게 인문학을 전수하기 위한 새로운 교수방법과 강의 매체를 모색해야 한다는 게 이번 강연의 주요 내용.
‘시대가 변할수록 우리는 변하지 말고 관습과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수구적인 태도는 인문학의 미래를 위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문화연구’를 제시했다.
종래의 인문학 연구범위를 확장해 음악 미술 대중문화 언론 광고 등 문화 전반을 연구하자는 것. 그럴 경우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자기가 좋아하는 문화 텍스트를 통해 인문학을 재미있게 공부하고, 자국 문화와 외국 문화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주며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력 배양, 문화 수용의 분별력 함양, 학문간 장르간 경계 해체, 문화 전문가 양성 등 다양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역설했다.
두번째 강연에서는 이중표 우리 대학 철학과 교수가 '불교의 인과율'에 대해 소개했다.
창조론이나 원자론과 같이 불교의 연기설 또한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인과율인데, 이 연기설을 통해 불교의 세계를 한층 깊이 들여다본 시간.
이 교수는 2천년이 넘게 서양문화를 지배해 온 선형인과율을 비판하면서 붓다의 연기설을 통해 우리의 신념이 얼마나 허술한 토대 위에 놓여 있으며, 또 얼마나 독단적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었다.
논리학을 근거로 하는 선형인과율의 직선적이고 단일방향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인과관계를 상호적인 것으로 보는 상호인과율을 취하는 것이 세계를 보는 보다 합리적인 관점이며, 동시에 이러한 연기론적 세계 이해가 윤리적 토대를 마련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 강연의 주된 내용이다.
이 교수는 모든 것이 연기론적 업보(業報)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면, 자타불이(自他不二), 동체자비(同體慈悲)의 사회.환경 윤리의 근거가 될 것이라며 연기설의 윤리적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불교의 상호인과율은 현대의 시스템 이론이나 생물학의 관점과도 일치하는데, 이들은 공히 사물 중심에서 벗어나 관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상호인과율이라는 인과율적 기반을 공유한다며 불교의 인과율이 갖는 현대적 의의를 제시했다.
이에 나아가 현대사조와 불교의 인과율적 공통기반은 과학과 종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결코 대립하지 않고 인간의 바른 삶을 밝히는 데 함께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