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교정에는 몇 가지 문화재들이 있다. 박물관 주변에 있는 돌벅수나 서봉사지 부도 등 모두 외부에서 옮겨온 것들이다. 한 때 제자리에 있었을 때야 화려했던 삶을 살았겠지만, 이제 쇠락한 본가를 떠나 부평초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슬픈 역사들이다.
그 중 일반인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인 대강당 앞 두 석탑. 사람들은 수 없이 그 앞을 지나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지만, 그래도 수 백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역사적인 유물들이다. 비록 보호 문화재로 지정받진 못했지만 수 백 성상 세월의 흔적과 무게를 고스란히 이고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석탑중 작은 것은 담양군 남면에 있는 서봉사지(瑞峰寺址)에서 박물관 앞 부도 1기와 함께 옮겨 온 것이다. 1969년 우리 대학 호남문화연구소 등이 도굴범들에 의해 반출되려는 것을 찾아 학교로 옮겨왔다니 용봉골에 든 지도 반세기에 가까워진다. 처음엔 지금의 출판부(옛 박물관) 앞에 있었으나 제2도서관(일명 홍도) 건립으로 다시 이 곳 대강당앞으로 옮겼단다. 요즘 유행하는 광고카피처럼 ‘집떠나니 고생’이다.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나 상륜부, 기단은 유실되고 지금은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만이 모습을 갖추고 있다. 뭔가 밸런스가 맞지않는 모습으로 보아 중간이 사라지고 없는 게 분명하다. 첫 자리를 잡았던 절집이 스러지고 없으니 이런 운명이리라.
그 옆에 있는 5층짜리 석탑은 더 멀리 영암 청풍사지에서 왔다. 역시 1969년 도로확장으로 사라질 위치에 이르자 우리 대학으로 옮겼다고 하니 서봉사지석탑과 ‘유랑동기’다. 오층 옥개석과 상륜부가 유실되었으나 원래는 오층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 중기나 말기 석탑으로 본단다.
카메라를 들고 교정을 다니면서 늘 이 들 두 탑의 운명을 생각한다. 망국의 한을 품고 이국땅을 떠도는 망명객의 슬픈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안쓰럽다. 제 목적대로 살아가기는 커녕,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지나다니면서 찍어두었던 탑들의 모습을 계절별로 모아보았다. 사진은 좋은 기록 방식이다. 기록하고 모아두면 역사가 되고 새로운 문화가 된다. 사진이 갖는 묘미의 하나리라. 주변에 보이는 것들의 생을 기록하는 것으로 사진은 매우 유용하다.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중요하지 않다. 무생물도 내가 기록하고 숨결을 불어넣는 순간 살아 숨쉬며 꽃처럼 피어난다. 일상의 작은 것, 흔히 보이는 것도 기록하라. 캠퍼스에도 그럴 대상들이 숱하게 널려있다. 자주 들여다볼 대상이나 주제를 정하면 더욱 좋다. 물론 상당한 관심과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