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창의 계절이다. 버들강아지, 유채, 개나리, 진달래, 매화, 동백. 그리고 이른 벚꽃까지. 자신만의 색깔과 향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들 뜬 마음은 벌써 산동으로, 영취산으로, 광양으로, 해남으로 달려가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캠퍼스 자체가 식물원인 교정에서 봄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연출해낸 봄꽃의 향연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힐끗 보고 지나치는 정도의 관심이 전부인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특히, 꽃보다 더 밝고 화사한, 봄을 온몸으로 전해주는 젊은 학생들에겐 그리 큰 유혹거리도 아닐지 모르겠다. 나이 들면 꽃이 보이고 자연이 보인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은 터라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무심한 발길들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만화방창의 계절에 그래도 뭍 꽃들의 시샘을 받는 게 대강당 옆에 자리한 기품이 넘치는 홍매이다. 오랜 연륜 만큼이나 단아한 자태에 절로 발길을 멈추고 눈길을 주게 된다. 홍매가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트리는 날이면 행인은 물론이고 어김없이 손장난감에 홀딱 빠진 애호가들이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모습을 자꾸 볼 수 있다.
필자가 연재를 시작하며 얘기했던 것처럼, 사진은 우선 발견이다. “사진은 발견이다. 매일 보던 너무 흔한 모습이었지만, 내가 카메라렌즈를 갖다 대는 순간 전혀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무심히 대했던 소중한, 의미 있는 존재들을 발견해가는 기쁨 그게 큰 매력일 것이다.
더불어, 사진의 또 다른 매력은 기록일 것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도, 내 주변도, 그 주변의 사물들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반가운 변화도 있지만, 거부하고 싶은 변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이 없다면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다. 사진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대강당 앞 홍매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오래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거듭해 왔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변하였을 것이고, 누군가의 손에, 생각에 따라 또 그랬을 것이다. 매화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변했을 것이다. 까까머리 검정 교복으로 지켜보던 그 옛날 선배부터 꽃 보다 더 화사하게 차려입은 짧은 치마의 신입생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런 점에서 홍매가 처음 그곳에 터를 잡은 그 시절부터 지금의 모습까지를 한편의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과 몇 해 사이이지만 소담하면서도 수북한 모습이 왠지 엉성하게 변한 것만 봐도 뭔가가 달라진 게 사실이다(최근 2, 3년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누구의 손에 의해서 그리 되었는지? 왜 그리 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원망스러운 건 틀림없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홍매의 풍상을 있는 그대로 몇 십 년, 몇 백 년을 이어 담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